닫힌 전시가 남긴 20,560개의 발자국

토요일 오후 3시, 미술관 로비가 가장 붐비던 시간. 누군가는 키오스크 앞에 서서 성인권 한 장을 끊고, 그 옆 안내데스크에서는 아이들 손을 잡은 인솔 교사가 단체권 여러 장을 받아 갑니다. 그날의 그 장면은 작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54일치를 모아놓고 보니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전시 '연민 SYMPATHY'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응노미술관(대전 공립,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운영)에서 2026-04-07부터 2026-06-07까지 열린 이 전시는 월요일 휴관을 포함해 54일 동안 관람객을 맞았습니다.
전시가 끝난 지금, 우리는 조명을 끄고 발권 데이터 전체를 통째로 열어봤습니다. 개별 관람 하나하나는 그날의 작은 선택이었지만, 54일치를 모아놓고 보니 하나의 전시가 어떻게 굴러갔는지가 지도처럼 드러났습니다. 이 글은 그 회고입니다. 숫자가 판단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다음 기획을 위한 재료는 됩니다.
총량으로 먼저 본 전시
- 총 발권(관람) 20,560매, 거래 13,436건
- 하루 평균 약 381매
- 환불 128건 → 환불률 약 0.95%
54일 동안 2만 매가 조금 넘게 발권됐고, 환불률은 1%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취소가 거의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발권이 실제 관람으로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20,560매를 '누가, 어떻게, 언제' 발권했는지 세 갈래로 나눠 들여다봤습니다.
핵심 인사이트: 채널이 스스로 역할을 나눴다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것은 두 발권 채널의 분업이었습니다. 무인 키오스크와 안내데스크(POS)는 서로 다른 종류의 관람객을 흡수하고 있었고, 그 경계가 데이터로 선명하게 갈렸습니다.
키오스크 — 개인 유료 관람의 흡수구
- 발권 11,576매 = 전체의 56.3%
- 거래당 1.0매 (1인 1매)
- 이 중 성인권이 10,396매로 키오스크 발권의 89.8%
키오스크는 혼자 와서 성인권 한 장을 끊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발권을 거의 전담했습니다. 거래당 1.0매라는 숫자가 이 성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성인 유료권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는 것은, '혼자 와서 표를 사는' 관람의 대부분이 기계 앞에서 조용히 처리됐다는 뜻입니다.
안내데스크(POS) — 자격 확인과 단체의 자리
- 발권 8,984매 = 43.7%
- 거래 1,860건, 거래당 평균 4.8매
- 이 중 무료·우대(0원) 발권이 6,806매로 POS의 75.8%, 단체권 1,249매
반대로 안내데스크는 거래당 평균 4.8매로, 한 번에 여러 장이 오가는 창구였습니다. 발권의 4분의 3 이상이 0원권이었습니다. 경로·장애인·국가유공자·8세 이하처럼 '자격 확인'이 필요한 발권과 단체 관람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이 고스란히 데스크에 모였습니다.
이 분업은 발권의 '구성'에서도 드러납니다. 키오스크는 대부분 성인 1인권(89.8%가 성인)이었고, 데스크는 0원권만 75.8%일 만큼 무료·우대와 단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같은 '한 장'이라도 두 창구가 처리한 발권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관람 패턴: 주말과 오후에 몰렸다
요일
- 주말(토+일) 10,353매 = 50.4% (평일 10,207매)
- 토요일이 6,036매로 최다
- 주말 하루가 평일 하루의 약 2배
54일 중 주말은 소수지만, 발권의 절반이 이 이틀에 몰렸습니다. 주말 하루의 밀도가 평일의 약 2배라는 점은 인력·안내 배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됩니다.
시간대
- 오후 2~4시(14~16시)가 피크
- 오전 10시 개관, 오후 5시 이후 급감
하루 안에서도 흐름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문을 열고, 오후 2~4시에 정점을 찍은 뒤, 5시 이후 빠르게 줄었습니다. 앞서 그린 '토요일 오후 3시 로비'는 통계적으로 가장 붐비던 바로 그 지점이었던 셈입니다.
최다 관람일
- 2026-05-02(토) 937매로 최다 — 5월 초 연휴·가정의달 방문 집중
- 5/8은 802매가 165건(거래당 평균 4.9) → 학교 등 단체 방문일로 추정
같은 '많이 온 날'도 성격이 달랐습니다. 5/2는 개인 방문이 겹친 날, 5/8은 거래당 매수가 높은 단체 방문일이었습니다. 총량만 보면 놓칠 결을 거래 구조가 잡아냅니다.
권종으로 본 공립미술관의 자리
권종을 매수 기준으로 펼치면 이렇습니다.
- 성인 11,227(전체의 54.6%)
- 경로 우대 3,957
- 어린이·청소년 1,278 / 8세 이하 1,278
- 어린이·청소년 단체 1,036
- 그 외(기타) 629
- 장애인 우대 491
- 꿈나무사랑카드 245
- 성인 단체 213
- 멤버십 116
- 국가유공자 우대 90
성인권이 절반을 조금 넘고, 나머지 절반에 우대·단체·아동 관람이 촘촘히 들어차 있습니다. 무료·우대 관람은 전체의 약 3분의 1(무료입장 약 6,600~6,800매)에 이릅니다.
경로·장애인·국가유공자·아동을 향한 무료·우대 발권이 이만큼이라는 사실은, 이 미술관이 '입장료를 받는 곳'이기 전에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라는 정체성을 데이터로 증명합니다. 그리고 앞서 본 대로, 이 3분의 1의 상당수가 자격 확인을 거쳐 안내데스크에서 발권됐습니다. 채널 분업과 공립미술관의 역할은 사실 같은 이야기의 앞뒤였던 셈입니다.
참고로 이 전시는 AI 도슨트 기능이 켜져 있었지만 시범·무료 단계여서 이용 성과 수치는 별도로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회고에서는 도슨트가 관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눠 두는 것도 데이터 회고의 몫이니까요. 이번에는 발권 데이터가 실제로 말해주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닫힌 전시가 다음 전시에게
54일, 20,560매. 하나의 전시가 남긴 발자국을 모아보니 몇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유료·개인은 키오스크가, 자격확인·단체는 데스크가 흡수했고, 관람은 주말과 오후에 몰렸으며, 세 명 중 한 명은 무료로 전시를 봤습니다.
이 숫자들은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 전시에서 키오스크를 몇 대 둘지, 주말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 단체 예약 창구를 어떻게 열지 같은 질문에 근거를 줍니다. 닫힌 전시가 남긴 데이터가, 아직 열리지 않은 전시의 기획 재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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